살아가노라니

물과 우유

평화 강명옥 2005. 8. 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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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식성이 좋았다. 유달리 좋아하는 음식이 없는 것처럼 싫어하는 음식도 없어서 무엇이든지 잘 먹었다. 하루 세 끼 밥 먹으면 그것으로 끝이었고 간식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만든다는 것은 나의 의식 속에 없었다.

 

결혼 후에 내 손으로 무엇인가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 것이 참 부담스러운 일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일상이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부담감은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주 기본적인 음식만 만들고 '요리'라고 하는 것은 바깥에서 먹는 것으로 치고 산다.

 

그럼에도 요즈음 뉴스를 볼 때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식품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 관심 있게 보고 건강 프로그램이 나올 때 채널을 돌리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나이가 든 탓인가 싶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우유에 꿀과 식초를 타서 먹는다던가, 여러 가지로 좋다는 키위를 매일 한 개씩 먹는다던가, 비타민 씨를 매일 한 알씩 먹는다던가 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오래 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꾸준히 무엇인가를 먹는 것을 중간에 잘 잊어버린다. 새로운 메뉴가 등장하면 남편이 그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면서 반문하고는 한다. "이번 거는 얼마나 오래 가는 거야?" 하이고, 민망스럽게... 잊지 말고 매일 한번은 먹어주어야 하는 호르몬약도 먹기 시작한지 2년이 넘은 지금도 깜빡깜빡 할 때가 있는데 좋다고 해서 먹는 것이야 자주 잊어먹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작은 목소리로 변명을 하지만.

 

한동안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기사와 프로그램을 본 지금은 확실하게 결론을 내렸다. 특별히 어떤 병으로 인해 제한만 없다면 좋다는 특정한 것을 집중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골고루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먹는 것에서 잘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마시는 것이다. 하루에 물을 적어도 여덟 잔은 마셔야 한다는데 물만 일부러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 내가 물을 마시는 것은 약을 먹을 때이다. 그러다 보니 마시는 것은 종류에 상관없이 잘 안하고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뼈가 약해 칼슘 보충을 위해 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다는 말이 아주 합당하게 여겨져서 되도록 우유를 매일 마시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몇 모금 목에 넘어가면 이미 충분하다는 신호가 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언젠가 과일을 썰어서 우유에 담가 숟가락으로 떠먹었는데 아무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컵에 우유를 따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국그릇에 담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전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해 먹는 것이냐 먹기 위해 사는 것이냐? 아이들의 능력 개발을 위해 요리 학원에 보낸다든가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요리를 배워 자격증을 땄다 든가 하는 기사가 흔한 요즘이다. 딸 손에 물 안 묻히게(?) 키우셨다가 결혼시키고 나서 지금까지도 늘 전전긍긍하시는 친정어머니와 거의 같은  구세대 인물인 내게는 정말 많이 달라진 세상이다. 음식 잘하는 것이 자랑이 되고 전문이 되며 사업이 되고 먹는 것이 온갖 화제가 되는 요즘 세상은.

 

그러나 음식에 신경 쓰고 맛있는 것에 점점 관심을 기울이는 내가 그간 철이 든 것인가 아니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쯤은 알아 가고 있는 것인가? 
                        

 

The Bible is old, but its truths are always new.
 성경은 오래 되었지만 그 속의 진리는 항상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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