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느끼며

간구합니다

평화 강명옥 2006. 1. 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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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대학원 동문들이 모여서 학원장님의 쾌유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가졌다. 청년시절부터 학교를 세우고 평생을 교육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 분이 이제 중한 병으로 누워 계시는데 우리가 해드릴 것이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사학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일선에서 물러나서 정말 인재를 키워보겠다고 해서 정성을 들여 만든 학교가 GIP이다. 공기 좋고 풍광 좋은 터에 일일이 교정의 돌까지 골라가며 만들었고 겨우 연간 몇 십 명의 학생들을 위해 국내외에서 좋은 교수님들을 모셨다.

 

매주 세미나를 열어 어찌하면 이 세상을 좋게 만들 것인가 세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그저 몇 시간이고 이야기해주고 싶어했던 학원장님이 학생들 모두에게 장학금과 기숙사비 그리고 용돈까지 주어가며 완전한 뒷바라지를 하였다.

 

출신 대학은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와서 서로 달랐지만 우리는 4학기동안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친형제 자매처럼 가까워졌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학원이 세워진지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졸업생이 겨우 300여명 남짓하며 나이 상관없이 기수와 상관없이 만나면 허물없는 선.후배로 지낸다.

 

그렇게 학생들의 공부 뒷바라지하는 것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해서 사회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뜻을 펴고 기여를 하라는 것 외에는...졸업생들은 이제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서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원 다니면서 늘 꿈을 꾸었던 동문들은 십 수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모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서 어디서도 이야기하기 힘든 세상의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8년 만에 30의 나이를 넘겨 대학원의 문을 두드렸던 나를 다른 교수님들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지금 있는 자리가 더 좋다고 받아들이기를 망설였을 때 흔쾌히 입학 허가를 해주신 분이 학원장님이셨다.  

 

마지막 4학기 때는 나의 전공이었던 국제경영학과 학생이 유일하게 나 혼자였다. 그래서 내가 남아 있던 두 과목의 강의를 들었을 때, 국내 연구소에서 오신 교수님에게는 혼자, 그리고 외국 대학에서 오신 교수님에게는 청강하는 학생들 몇과 함께 강의를 들었다. 당시 대학원장님은 가끔 내게 "강양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GIP에서의 공부는 졸업 후 내가 여러 기관에서 일을 하는 밑받침이 되었고 나는 여러모로 세상에 갚아야 할 사랑의 빚이 참 많은 사람이다. 
 
학원장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 회의실로 가기 며칠 전부터 17년 전의 옛 학창 시절 일들을 생각하며 GIP의 앞날을 생각하며 동문들을 생각하며 여러모로 착잡했다. 함께 모여서 학원장님의 회복과 그 가족의 평안함과 학원장님이 이룬 학교들의 발전과 그리고 사회와 국가를 위한 합심 기도를 하면서 정말 우리 동문들이 그 분의 뜻처럼 각자 있는 곳에서 큰 기여를 하는 것을 충분히 보실 만큼 오래 사시기를 간구 하였다.  

 

The fires of testing can produce a shining testimony.
 시련의 불길은 빛나는 간증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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