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후배의 상처(喪妻)

평화 강명옥 2006. 3. 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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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전화가 와서 문상을 다녀왔다. 대학원에서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공부하던 후배의 처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 후배의 처가 암으로 고생을 하고 있으며 호주교민이라 치료 차 호주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상주로 서 있는 후배의 얼굴을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3년 전에 암을 발견했을 때는 초기여서 치료하고 잘 지냈으나 다음 해에 다시 발병을 하였고 많이 힘들었다고 하였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아내의 병 수발로 인해 상당히 마음고생과 몸 고생을 했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는 아내가 마지막에는 평안한 가운데 영면을 하였다고 하면서 아내가 자신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다지 나이 많지 않은 처남과 둘이 서있는 모습이 딱해 보였다.

 

여러 동문들이 먼저 와 있어서 같이 둘러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동문 말이 뒤늦게 결혼하여 평생의 짝을 만났다고 좋아하며 살던 친구가 상처를 하였는데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참으로 힘들게 지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은 부모도 자식도 아닌 배우자가 죽는 것이라 한다. 요즘도 가끔 나이에 상관없이 배우자가 죽은 후에 따라서 자살했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에 나고 있다. 내 가까운 주변에서는 후배의 경우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동문들도 어리둥절하고 착잡한 모습들이었다.

 

“우리가 벌써 이런 나이가 되었다 보다” 한숨 끝에 이야기하였더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하늘나라 가는 것이 나이순이 아니니 누구 한사람 자신 있게 삶과 죽음에 대해 말을 하기가 어렵다. 뒤늦게 나타난 동문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가운데 “초상집에서 계속 보게 됩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맞는 이야기였다.  

 

내가 아버지 가시는 일을 겪고 보니 그 전에도 웬만하면 문상은 빠뜨리지 않고 다니려고 노력했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남은 가족에게는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시절 같이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던 ‘사랑의 모임’이 있었다. 그 멤버였던 후배가 물었다. “누나, 저 선배가 왜 그 때 자기를 하나님께 인도하지 않았었느냐고 뭐라고 하는데 우리가 정말 노력을 하지 않았나요? 정말 노력 많이 했었는데....” “왜, 많이 애썼었지”

 

그 때라는 것이 벌써 16년 전 일이다. 뒤늦게 사랑하는 아내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나 이제 그 아내를 하나님께로 보내고 난 후배에게 가장 절실하게 생각되는 것이 왜 진작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했었나 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 이야기가 ‘너는 지금 하나님이 네게로 보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전했느냐?’ 라는 문책으로 들렸다. 화사한 웃음으로 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여 놓여 있던 후배의 아내 얼굴이 슬프게 떠오른다.


 

God doesn't comfort us to make us comfortable, but to make us comforters. 
하나님은 우리를 안락하게 하려고 위로하지 않으시고 위로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 위로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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