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호텔 로비

평화 강명옥 2006. 11. 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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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지금 일하는 기관과 관련된 국제기구에서 외빈이 방문을 한다.

우리가 외국에 출장을 가면 현지의 누군가가 일정을 안내하듯이

나도 최근 일부 일정을 맡아 안내 역할을 했다.


25년 전 사회 초년병 시절 그렇게 외빈 안내를 한 적이 있었다.

회사의 주요 손님이 아내와 딸 손자까지 대동하고 왔는데 일을 보는 동안

가족들에게 서울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창덕궁(비원)을 안내하고 서울 시내를 함께 다녔다.

내가 맡은 안내가 끝난 저녁에 다시 연락이 왔다.

만찬에 가족들까지 참석을 해야 하는데 호텔에서 도저히 베이비 시터를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내가 만찬이 끝날 때까지

다섯 살 배기 꼬마를 데리고 호텔방에서 놀았다.

이 녀석이 내가 특별히 자기를 봐준다는 것을 알았는지 연신 냉장고를 열고

먹을 것을 꺼내주며 먹으라고 했다.

“Thank you, Miss Kang."

예의바른 꼬마 신사였다.


그때 안내 일을 끝내고 나 나름대로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내가 안내를 받는 역은 해도 되도록이면 안내 하는 역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회사 외빈이 왔을 때 그 일을 거절했고 다른 후배가 맡아 했다.


그동안은 출장으로 또는 방문으로 외국을 갈 때 안내를 받는 입장으로 지냈다. 

그래서 이번에 맡아 한 외빈 안내가 새삼스럽기도 했다.

남산 회전식당에서 밥 먹으며 구경하기, 경복궁 안내, 한강유람선 타기, 인사동 거리 안내,

이태원과 명동, 용산 등에서 쇼핑하기 등 오랜만에 해보는 일들이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호텔 로비에서 외빈을 기다리게 되었다.

약속이 있어 호텔 음식점에 들어가는 거와는 또 다르게 일 때문이라는 것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이는 발길들...

밖에는 비가 오는데 중국에서 회의를 마친 아프리카 정상들이 방문하는 날이어서

로비가 더 복잡했던 것 같다.

만찬에 같이 가기 위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로비 한가운데에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였다.


유심히 보는 사람들이 드문, 복잡한 호텔 로비 한가운데서 나름대로 열심히

음악에 빠져드는 연주자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 한 장  찍었다.


잠시 머무는 사람들의 화려한 외양이 바쁘게 보이는 호텔 로비.

국제회의 또는 오찬, 만찬 행사를 준비하며, 또 참가하며 자주 드나들었고

해외 파견 나갔을 때에는 집구하기 전에 두 달간을 호텔에서 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호텔 로비는 늘 허전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날따라 피아노 연주자의 뒷모습에서 그 쓸쓸한 느낌이 짙게 배어나오는 것

같았던 것은 비 때문이었을까?



The person who refuses to hear criticism has no chance to learn from it.

비판을 들지 않으려는 사람은 비판으로부터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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