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노라니

뒷모습의 외로움

평화 강명옥 2002. 9. 2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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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시절에 내가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 폭군(?)에 가까운 반장을 해도 늘 압도적인 표로 다시 뽑히고는 했으니까...

고2가 된 어느 날 웬 1학년 학생이 날 찾아왔다. 자기 친구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쉬는 시간이면 우리 반에 와서 나를 보고 가고는 한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1학년 후배를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후배는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머니께 이야기했고 그 어머니는 여학교 시절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셨다는 것이었다.

후배는 자주 편지를 보냈고 나도 열심히 답장을 쓰고는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후배는 교대에 진학해서 선생님이 되었고 결혼해서 잘산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보통 여학생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는 시기를 보내는데 그 후배에게는 내가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후배는 전학년이 교련 연습을 할 때 나를 봤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이래 키가 거의 자라지 않은 내가 앞에서 중대장으로 서 있었으니눈에 잘 띄기는 했다. 거기다가 목소리는 크고 굵었으니...

일주일에 한번씩 방송으로 채플을 봤는데 사회를 각반 반장이 돌아가며 했다. 그 때 내 목소리에 반해서 팬이 많았었다고도 들었다.

그런데 후배가 나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특이했다. 교련연습을 마치고 모두 교실에 들어가는데 내가 혼자 앞에 걸어가더란다. 그런데 그 뒷모습이 그렇게 외로워 보였는데 그것이 마음을 저리게 했다고 한다.

늘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바쁜 모습으로 지내는 나의 마음 속에 떠돌던 삶의 외로움을 그 후배는 뒷모습에서 예민한 감수성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내가 기억하는 외로와 보이는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퇴근하는 길에 동료가 갑자기 어딘가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것이었다.

"저기 저분 보이세요? 이번에 새로 오셨는데, 제가 출장 갔을 때 참 잘 해주셨어요. 능력과 인품이 아주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평판도 그렇다고 하네요. 두고보세요."

본인이 능력이 뛰어난 관계로 좀처럼 남의 칭찬을 하지 않는 동료의 말이라 솔깃해서 쳐다보았던 것 같았다.

그 때 동료가 가리키는 인사는 막 자동차의 문을 열려고 하는 구부정한 뒷모습만 보였다. 보통 첫 대면이 얼굴을 보며 하는 것이었는데 뒷모습을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리 흔한 일이 아니어서인지 구부정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얼핏 느꼈던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그 뒷모습이 상당히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뒷모습의 주인공은 지금 나의 남편이다.

The richest people on earth are those who invest their lives in heaven.
(이 땅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천국에 자신의 삶을 투자한 사람이다)

천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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