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 (1) "야, 임마. 반장이면 적어도 중립은 지켜줘야 할 것 아냐. 왜 애들 편만 들어." 고3시절 매일 아침 조회 때마다 담임선생님의 야단을 맞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담임 선생님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주위에 있는 아이들이 조그맣게 중얼거리곤 했다. "어휴, 또 시작했다. 시작했어. 지겨워.. 일하며 느끼며 2002.02.17
핍박 (2) 순간 일이 너무 이상하게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고 바로 교실 문을 열고 선생님을 뒤좇아갔다. 선생님이 막 교무실 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른 의도는 없었고 단지 정답을 확인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제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용서하세요." "학생들 앞에서 그러.. 일하며 느끼며 2002.02.17
핍박 (3) 매일 방과후에 반 전체가 남아 늦게까지 자습을 하면 손수 분유를 타서 나눠줄 만큼 열성이었던 담임선생님은 항상 반 전체를 꽉 틀어쥐었었다고 하였다. 전년도 고3반 반장이었던 선배는 선생님이 언짢아 하는 일이 있으면 반성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일일이 도장을 받아 갖다 드리고는 했다고 했다.. 일하며 느끼며 2002.02.17
소요회의 기쁨 1982년에 대학을 졸업하였으니 올해 말이면 꼭 졸업한지 20년이 된다. 그 때부터 만나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을 졸업 후에도 매달 한번 씩 보고 있다. 대학 입학 때부터 계산하면 24년을 만나온 셈이다. 계열별 입학이었고 원하는 대로 과를 지망하던 때여서 과동기가 290여명이 된다. 학교 다닐 때에는 이름.. 일하며 느끼며 2001.12.21
농활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농촌봉사활동이었다. 당시는 방학이면 대대적인 농활이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대학 입학 후 계속 맡고 있던 과외 팀이 4-5개였기 때문에 방학기간에 10일을 뺄 수가 없었다. 3학년 봄에 전국 대학생 회장들이 이대에 모여 회의하던 날 저녁 급습.. 일하며 느끼며 2001.12.20
전공 내가 대학을 입학했던 1978년도에는 계열별 입학을 하고 3학년이 되어서야 전공을 결정했다. 전공은 성적과는 관계없이 원하는 대로 결정을 할 수 있었고 대신 부전공이 필수였다. 그래서 인문사회계열 입학생 520명중에 영문과 졸업생이 290명이 넘었다. 당시 철학과, 기독교학과에는 전공생이 각각 1명.. 일하며 느끼며 2001.12.18
어디서 본 듯한... 남편의 과 직원들과 부부 모임을 할 때였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옆에 앉았던 직원 부인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기요. 생각이 잘 안 나서 그러는데요. TV에 나오신 적이 있지요?" 그러자 그 앞에 앉았던 다른 직원의 부인이 맞장구를 친다. "그러지 않아도 저도 내내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 일하며 느끼며 2001.12.16
여자 과장님 (2) 일을 할 때 늘 직원들과 회의를 하였고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충실하게 따랐다. 그러다가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다. 지원금을 받고자 하는 단체들을 모으는데 신문에 공고를 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업 첫해라 지원금의 규모가 적었고 많은 단체들이 요청할 때 분배의 문제가 있었다. 그.. 일하며 느끼며 2001.12.10
여자 과장님 (1) 전 직장에서의 일이다. 때가 되어서 과장으로 승진했고 신설되는 과를 맡게 되었다. NGO들의 활동이 해외로 확대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몇 년 간의 사전 작업을 거쳐 해외원조예산을 NGO들에게 지원하기로 결정되었다. 기관에서는 업무를 담당하게 될 과를 신설하였다. 초대과장으로 부임하였을 때 .. 일하며 느끼며 2001.12.09
이해 못할 에티켓 몇 년 전 태국에 파견되어 근무할 때이다. 지역사무소에 공용차가 한 대 있었는데 그것은 소장님이 주로 사용하였고 부소장이었던 나는 어차피 운전을 못하니 차를 사거나 빌릴 생각을 못하고 주로 택시를 타고 다녔다. 내가 유일하게 배우고자 노력했던 태국어가 바로 택시 타기에 필요한 용어들이었.. 일하며 느끼며 2001.12.06